"깨진 틈 사이로 빛이 들어오는 것처럼…희망 품은 '유리동물원'"
본문
![]()
이신은기자= 어느 공간에서 인터넷에 접속하려면 패스워드를 입력해야 하잖아요. 패스워드를 입력하는 순간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처럼, 작품 속 상징들을 읽어가다 보니 '이 작가는 한 집안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신유청 연출이 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연극 '유리동물원' 기자간담회에서 작품을 이같이 소개했다.
그는 "한 집안의 이야기 속에 꼭 당시뿐 아니라 오늘의 우리에게도 통용될 수 있는 인류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유리동물원'은 20세기 미국 현대 연극의 거장 테네시 윌리엄스의 대표 희곡다. 1944년 미국 시카고에서 초연된 작품은 이듬해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됐고, '뉴욕 드라마 비평가 협회 최우수 미국 연극상', '시드니 하워드상' 등을 수상했다.
작품은 1930년대 미국 세인트루이스를 배경으로 가족에 대한 책임과 자유, 더 나은 삶을 향한 희망과 불안 사이에서 흔들리는 윙필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다.
신 연출은 작품의 배경이 1930년대에 놓인 이유를 고민하다 기존 가치가 흔들리고 또 다른 전쟁의 기운이 감돌던 당시 시대상에 주목했다.
그는 "(당시는) 제1차 세계대전이 지나면서 그동안 지켜왔던 고귀한 가치가 무너지고, 국가는 자국의 이익에만 치중하던 시대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며 "수많은 공장이 돌아가고 산업화와 속도 경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인간은 그 속도와 힘에 맞는 존재가 되지 않으면 가치를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은 그가 윙필드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이어졌다.
그는 홀로 두 자녀를 키우는 아만다를 "앞으로 나아가고 싶지만 너무 오래된 지도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해석했다. 변화하고 싶어도 딸에게 오래된 방식을 전수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란 의미다.
시인을 꿈꾸는 아들 톰은 "가족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떠나지도, 제대로 머물지도 못하는 인물"로 바라봤다.
다리가 불편한 딸 로라에 대해서는 극이 결말로 향할수록 "로라의 존재와 로라가 꿈꾼 세계가 핵심으로 드러난다"고 짚었다.
김성령은 "이번이 여덟 번째 연극이다. 무대에 설 때 가장 두렵고 불안하지만 그만큼 도전하고 싶은 게 무대"라며 "지금까지 한 연극 중 가장 큰 규모의 연극을 하고 있다. 너무 충만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최정원은 "대본을 처음 봤을 때 '우울하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보며 공부할수록 작품이 희망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처음엔 몸에 난 상처를 남들이 상처라고 해도 예쁜 액세서리라며 감추려고 하지만, 7장에선 그것이 상처라는 걸 인정하고 치료받아야 한다는 걸 느끼게 된다"며 "아만다 역시 자신이 버려졌다는 사실과 딸의 아픔을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가려 한다. 그런 점에서 희망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장승조는 "톰을 보며 갈 길을 정하지 못하던 20대, 30대의 나를 보는 것 같았다"며 "관객들도 각 인물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운선은 2014년과 2015년에도 국립극단에서 선보인 '유리동물원'에서 로라로 나선 바 있다.
아울러 기존 '유리동물원'과는 다른 무대를 보여줄 것이라며 "다르게 하려고 노력한 건 아니었다. 작품에 충실하게 깊이 들어간 결과이고, 원작의 본질과도 잘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고 보탰다.
그가 무대의 끝에서 보여주고 싶은 건 비극 속에서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 희망이다.
신 연출은 "비참한 고난과 큰 상처 속에서도 결국 깨진 틈 사이로 빛이 들어오고 싹이 튼다"며 "모든 것이 사라진 가운데서도 사랑이라는 싹이 틔어 오를 수 있지 않나 하는 작은 희망으로 극을 닫고자 한다"고 전했다.

lse720409@naver.com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